– 초대 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평화 서원, 이천휴게소 통일시비 새 단장
– “돌에 새긴 통일의 기도”, 일붕 서경보 큰스님 평화통일 시비 재조명
– 남북 평화통일 염원 담은 일붕 서경보 시비, 이천휴게소 명소로 주목
– 788기의 평화 서원,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통일시비가 전하는 메시지
이 비석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하필 돌이었을까?” 붓으로 쓰면 더 빠르고, 종이에 남기면 더 쉽고, 책으로 만들면 더 많이 읽힐 텐데 왜 큰스님은 굳이 돌에 새기셨을까.

▲ 경기도 이천휴게소에 세워진 ‘평화통일 기원 일붕 시비’. 초대 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은 남북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전국에 788기의 시비를 세우며 민족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최근 이천휴게소 통일시비 주변이 새롭게 정비돼, 큰스님의 평화 서원이 더욱 뜻깊게 다가오고 있다. (사진-담화총사)
그것도 한 기가 아니라 무려 788기의 남북평화통일 시비詩碑를 세우셨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돌은 오래 남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이는 찢어질 수 있고, 말은 바람 따라 흩어지며, 권력은 시대 따라 바뀌고, 사람의 기억은 쉽게 흐려집니다.
그러나 돌은 다릅니다. 한번 새겨진 뜻은 비바람 속에서도 남아 있고, 사람이 떠난 뒤에도 침묵 속에서 말을 이어갑니다. 일붕 큰스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붓으로 먼저 마음을 쓰고 그 붓글씨를 다시 돌에 새기셨습니다.
왜입니까? 평화는 순간의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행사장의 현수막이 아니라 후손에게 남겨야 할 약속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북통일을 말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말은 많아도 끝까지 남는 서원은 드물었습니다. 일붕 스님은 통일을 정치의 언어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통일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자비의 서원이었습니다. 북과 남이 갈라진 것은 땅만 나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갈라졌고, 눈물이 갈라졌고, 민족의 심장이 갈라졌습니다.
그 아픔을 치유하려면 칼이 아니라 자비가 필요하고, 대결이 아니라 이해가 필요하며, 증오가 아니라 평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큰스님은 시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에 새기셨습니다.
이것은 글씨가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이것은 조형물이 아닙니다. 서원입니다. 이것은 비석이 아닙니다. 민족의 눈물 위에 세운 평화의 등불입니다.

▲ 경기도 이천휴게소에 세워진 ‘평화통일 기원 일붕 시비’ 뒷면에는 초대 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이 남긴 평화통일의 염원이 친필 시구로 새겨져 있다. 남북 화합과 민족의 하나 됨을 기원하며 전국에 788기의 통일 시비를 세운 큰스님의 서원이 돌 위에 깊이 새겨져 오늘도 묵묵히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전쟁도 마음에서 시작되고, 평화도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통일은 지도자들이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분열이 먼저 끝나야 합니다. 내 안의 미움이 사라질 때 세상의 경계도 낮아집니다.
내 안의 증오가 녹을 때 민족의 얼음도 녹기 시작합니다. 788기의 시비. 이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한 기 한 기가 기도였고, 한 줄 한 줄이 눈물이었으며, 한 획 한 획이 민족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붓끝에서 태어난 글씨가 돌 위에서 영원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세상에 남길 것인가, 말인가, 분노인가, 욕심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일붕 큰스님은 답하십니다.
“평화는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로 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돌입니다. 그래서 시비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침묵의 돌은 우리에게 말 없이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먼저 평화를 새겨라.”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