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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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록하고 남을 추억하다.

담화총사 칼럼, 「우주를 품은 佛달」 “달 속의 부처, 마음 속의 우주,”

– 달은 하늘에 있고, 부처는 마음에 있다

벽사초불정사에 조성된 상징 조형물. 둥근 원은 우주와 원만함을, 중앙의 공간은 공空을, 그 안의 불상은 깨달음의 본성을 상징한다. 야간 조명과 어우러져 달빛 같은 불광佛光을 발하며 수행과 치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천년향화지지 청주 벽사초불정사에 조성된 상징 조형물. 둥근 원은 우주와 법계를, 중앙의 공空은 무한한 가능성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불광명월佛光明月의 형상은 자비와 평화, 수행의 길을 밝히고 있다.

▲ 천년향화지지 청주 벽사초불정사에 조성된 상징 조형물. 둥근 원은 우주와 법계를, 중앙의 공空은 무한한 가능성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불광명월佛光明月의 형상은 자비와 평화, 수행의 길을 밝히고 있다.


깊은 산사에 밤이 내리면 달은 말없이 떠오른다. 달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세상을 밝히고,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나뭇잎을 흔들어 존재를 알린다.

벽사초불정사에 세워진 「우주를 품은 佛달」은 바로 그러한 침묵의 법문이다. 처음 이 조형물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거대한 둥근 원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발견하게 된다.

둥근 원은 우주를 상징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은 생과 사를 초월한 진리를 뜻하며,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의 세계를 나타낸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계法界는 경계가 없다. 하늘과 땅, 산과 강, 나와 너,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원은 바로 그 무한한 우주와 법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원의 중심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비어 있음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공空은 허무가 아니다.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피어날 수 있다. 컵이 컵인 이유는 비어 있기 때문이며, 마음이 마음인 이유 또한 비어 있기 때문이다.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평화가 머물 곳이 없다. 하지만 욕심을 비우고, 분노를 비우고, 어리석음을 비우면 그 자리에 지혜와 자비가 들어선다. 바로 그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부처를 만난다.

부처는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다. 부처는 우리 마음속 본래의 모습이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맑고 깨끗한 본성이다. 그래서 「우주를 품은 佛달」은 달 속에 부처를 담은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부처를 깨우기 위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거대한 원은 황금빛 달로 변한다. 그 순간 조형물은 단순한 석조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법문이 된다. 어둠이 짙을수록 달빛은 더욱 밝아지고, 고통이 깊을수록 자비는 더욱 빛난다.

부처님의 광명 또한 그러하다. 불광佛光은 차별이 없다. 달빛이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듯, 부처님의 자비도 선인과 악인을 나누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고 품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 안에 떠 있는 달은 밝은가, 내 마음속 원은 온전한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욕심과 집착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품은 佛달」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거울이며,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고, 천년향화지지 벽사초불정사가 세상에 전하는 자비의 메시지다.

달은 하늘에 떠 있지만, 진정한 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달이 밝아지는 날,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품게 된다.

우주를 품은 佛달. 그 둥근 광명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부처의 마음을 배우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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